| Motion | 영상관련 모임 |
Read : 209, Vote : 2, Date : 2001-07-24 21:04:52 |
|
||||||||||||
![]() |
|||||||||||||
|
|||||||||||||
|
일전에 나는 디지털 테크놀러지가 저지르고 있는 만행에 대해 불평한적이 있었다. 대부분 그것은 사실이며 많은이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으며 영화제작을 염두에 둔 내게는 경계해야할 독초와도 같은것이다.
그러나. 디지탈 영상기술이란 궁극적으로 하나의 독립적인 영역이며, 그것 또한 실사 극영화와 마찬가지로 발전하고 진화할 권리를 가진 문화의 한 가지라는 관점에서 이번에 다룰 '화이널 팬터지'는 하나의 긍정적 시금석이 될 수 있을거라는 것이 영화를 본 내 느낌이었다. 미지의 세계로의 전진은 예술의 다른 이름이다. 왜 사람인가? '토이 스토리' 이후 매년 여름이면 심심찮게 나오는 3D 애니메이션은 그 동안 셀 애니메이션이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과는 또다른 질감과 동작표현으로 많은이의 사랑을 받아왔다. 근작 '슈렉'도 이러한 전통(아.. 벌써 전통이 되었나.)을 잘 이어받은 작품되겠다. 디즈니의 잘생긴 권선징악(못생기면 선이 아니랜다.)을 비틀었다고 해서 많은이의 갈채를 받고 있으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 작품에 대해서는 차후에 다루기로 하고... '슈렉'도 실사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상품성 높은 상상의 캐릭터들이 3D특유의 과장되고 미국적인 개그로 눈을 끈다는 면에서 그전의 많은 디즈니표 3D영화와는 크게 결별하지 못한다는 인상이다.(물론 액체나 불에 대한 표현은 괄목할 만한 것이었지만..) 이와 달리 '화이널 팬터지'는 3D의 새로운 세계를 연 시발점이 될 수 있는 영화다. 왜냐하면 사람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실제같은(여기서 그 의도의 성공여부는 잠시 미루기로 하자.). 사람은 애니에니션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영역이다. 왜? 사람은 늘 사람을 보고 사니까. 나같은 자폐끼가 좀 있는 사람을 제외하곤 사람은 사람을 제일 많이 보고산다. 우리의 눈은 인간의 동작과 표정에 익숙해있으며 나름대로 모두들 인간동작의 전문가들이다. 아주 작은 어색함도 집어낼 수있는 훈련된 눈을 가진 우리에게 도전장을 던진 발칙한 영화가 '화이널 팬터지'인 것이다. 이전에도 많은 티비시리즈나 비디오 게임 인트로에서 시도된적은 있으나 극영화에서는 처음시도이다.(얼마전 한국에서 별 반향없이 시도되었던 걸로 알고있다. 한국사람 돈은 없어도 꿈은 높다. 첫 3D영화에서 주인공이 사람이라니..) 하여간 그간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이제는 한번 해 볼만 하지않을까 라는 기대로 제작된 영화인 만큼 많은 부분에서 성과와 실패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영화를 본다는 것. 뤼미에르 형제들의 '기차의 도착'을 보고 뛰쳐나온 사람들 이래로 영화는 관객에게 하나의 "볼거리"이다. 이야기를 듣고 싶으면 할머니 무릎밑에 모이면 되었고, 이야기의 이미지화는 각자 듣는이의 몫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다르다. 할머니하고는 이야기하는 언어자체가 틀리다. 영상언어. 영화는 이미지로 말하며 이미지가 관객의 머리속에서 인물의 성격이나 사건의 암시와 같은 내러티브의 요소로 치환되 이해되는, 기존 이야기 서술구조와는 반대방향의 작동원리를 지닌 언어이다. 그래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활자(극본)에서 그림(영상)으로 이야기를 옮겨 적을 수 있는 일종의 번역기술을 갖추는 것이 제 일 덕목이다. 이와 함께 이미지의 신선함 또한 영화 만드는 사람의 영원한 숙제이다. 관객이 할 수 있는 상상력을 뛰어 넘는다는 것, 그것은 언제나 앞서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새로와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영화장이의 가슴에 문신처럼 달려있다. 죠르쥬 멜리아스의 판타지 영화들은 이러한 개념의 효시로서 아직도 많은 영화학도와 소수 관람자의 환호를 받고있다. 왜 갑자기 영화의 역사를 디비는가 하면 이 영화를 보면서 받은 그동안 한번도 겪지 못했던 재미있는 경험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신기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그 신기했던 장면들이 뭐.. 머리가 나부낀다거나 인상을 찌푸린다든가하는 실사영화에서는 신경쓸 이유가 없는 당연한 모습들이었기 때문이다. 60,000개가 넘는 머리를 일일이 심어 각기 움직이게 했다는 정성, 모든 동작을 실제배우의 연기에서 모션캡춰했다는 일견 무식해보이는 자본력, 안면근육의 해부학적 분석등.... 일상에선 당연한것이 스크린에선 신기한것으로 둔갑하는 마술, 뤼미에르의 영화를 본 그당시 관객들도 그랬을까? 연기력?! 어떤이가 이 영화가 나오기전 예상하기를 '애니메이션 주인공이 사람과 다르지 않다면 그저 한번도 본적없는 무명배우의 연기를 본다는 얘긴데.. 과연 씨알이 먹힐까?'라고 하였다.. 과연 그들의 연기력은 몇점? 우선 이 연기력이라는 측면에서 기술의 한계가 여실히 증명된다. 위에서 말했듯이 인간의 표정은 무척 복잡다난하며 관객은 그 난해한 근육의 기적을 매일 목격하고 산다. 그 높은벽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 감독의 선택은 의외로 단순했으며 유일했으리라. 무표정. 영화내내 모든 출연진들은 심오한 내면연기에 주력하는데, 간단한 예로 시작부터 끝까지 아무도 소리내어 웃거나 울지 않는다. 모두들 심각한 표정으로(지구의 종말이 닥쳤으므로) 대화하고 가슴속으로 분노한다. 이러한 감정표현의 부재안에서 감독은 어떤방법으로 연기력을 끌어냈을까? 정답은 바로 캐릭터 셋업이다. 큰틀의 이야기에 캐릭터의 성격과 백그라운드를 잘만 지정해주면 연기의 반은 거져먹는다. 많은 실사영화가 그러하듯이 이 영화도 각 캐릭터의 개인사나 성격묘사에 많은 전반부를 할애한다. 예를들어 우리의 악당 엘리엇대령님은 온 가족이 팬텀들에게 유린당하는것을 목격한 복수의 화신이다. 그에게는 제우스 빔의 사용은 지구수호의 역사적 사명에 앞서 개인의 복수가 우선이다. 이정도 전제만 깔아줘도 그의 무표정에는 비장함과 악랄함이 덮혀있다.(우리들 마음속에..) 시드 박사의 설득에는 비웃음의 무표정으로, 그레이 대위에게는 의심의 무표정으로, 죽음을 맞이했을때는 체념의 무표정으로 그는 연기를 하고있다. 물론 그 캐릭터 셋업이라는걸 썩 잘 깔아놓은것은 아니지만 전혀 새로운 세상 배경 설명에도 시간을 할애해야하는 SF의 특성을 고려하면 나름대로 성과는 있었다고 본다. 또 하나의 트릭. 이건 정말 트릭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 내겐 공명정대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의 개성은 기존에 있던 성공한 오락영화들의 캐릭터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이는 많은 미국영화에서 행해지는 상호 배끼기의 일환이라 눈살이 찌푸려지는데, 우선 관객들은 캐릭터가 친숙하기 때문에 쉽게 감정이입이 가능해진다. 듬직한 흑인 병사나 남자 뺨치는 용맹성을 자랑하나 마음만은 따뜻한 여성병사는 미래형 액션 영화의 단골손님격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캐릭터 셋업이 생략되어 있으나 그들의 무표정도 봐줄만 하다.(흑인병사가 죽기전엔 필살(?)의 표정연기를 펼친다. 애니메이터들은 그장면 때문에 머리에 쥐가 났었을 것이다.) 또 하나의 귀여운 선택. 이 영화는 감정의 고조씬에서는 어김없이 롱샷이다. 와이드 앵글이 작가주의 감독들의 전매특허가 아닌바에야 누구나 쓸 수 있겠으나, 이 영화는 약점을 가리려 쓰는것이 보이는것 같아 난 슬그머니 미소가 나왔다. 그들은 아직 신인배우다. 그들에게 어찌 알 파치노의 열정을 기대하랴. 또 그놈의 가상현실.. '화이널 팬터지'는 사람 아닌것을 사람이라고 거짓말을 본격적으로 하는 영화다. 그걸 믿고 안 믿고는 보는 사람에 따라 틀리겠으나 이 영화에서 우리는 생활속 가상현실에의 눈훈련 효과를 톡톡히 맛보고 있다. 만일 이 영화가 첫 3D영화 였다면 오히려 지금 느끼는 경외감보다는 덜 했을것이다. '토이스토리'처럼 태생을 인정하고 3D만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형식의 영화가 아닌, 실사를 모방한다는 3D의 또 다른 명제를 부각시키는 이 영화가 일번이 되었다면 관객들은 경이로움보다는 현실에 미치지 못했다라는 실망감으로 이영화를 받아들였을거라는 가정이다. 요는, 삶의 벌써 많은 영역이 가상현실로 채워지는 요즘 우리는 가상현실에 더 쉽게 밀착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우주선이 날라가는걸 보고 "야 진짜같다!"라고 느끼신다면 당신은 그과다. 젊은이들에게 현실의 벽은 점점 더 팽창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영화의 그럴듯하지만 존재하지않는 현실을 이해해준다. 그들은 푸른하늘 저멀리 새희망이 넘실거리는 미래까지도 이미 현실로 포용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이 일어나지도, 일어날 것 같지도 않은 미래에 관한 허상을 돈주고 볼 수 있는 배포가 있는 것일지도..(하긴 이만큼의 자본을 들여서 중년남자가 빈 아파트에서 여자를 꼬시는 것에 관한 3D영화를 만들일도 없지만서두...) 매트릭스 그후... 알다시피 이 영화의 감독은 일본인이다. 매트릭스에서 내가 예견했듯이(믿거나 말거나..) 헐리우드의 흐름은 동양으로 가고 있다. 와호장룡이나 이영화가 헐리우드 자본으로 탄생하게 된것은 우연이 아니며 하나의 흐름으로서 받아 들여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영화를 단지 오우삼이 존우가 되듯 서구에 그저 흡수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는 이 영화의 매무새나 주제의식에서 흐르고 있는 동양적 정서(많이 일본적..)때문이다. 이 영화는 모호하다. 적아식별이 예전처럼 용이하지 않다. 예전엔 나쁜놈은 죽일놈이고 죽여도 속이 시원했는데 이 영화의 적은 단칼에 죽이기엔 미안한 구석이 있다. 지구를 정복한 팬텀은 우리가 끌어 안아야 할 정령이요, 그나마 미워할만한 엘리엇 대령도 알고 보면 불쌍한 사람이다. 게다가 결말엔 적이 손을 내밀고 영웅은 숨을 거둔다.(이런 영화는 끝을 알고 봐도 된다. 날 너무 미워하지 말자) 대립을 선과 악으로 보지 않고 빛과 어둠으로 보는 양식은 예전 일본만화 '공작왕'을 꿰뚫는 정서다. 빛은 어둠이 없으면 존재하지 못하며, 그들은 대립하나 해답은 항상 공존이다. 적에대한 한 없는 두려움, 적을 품에 안고 살고있는 여인, 그것은 용감하며 정의로운 미국인과는 거리가 있는 상처입기를 허락받은 인간의 모습이다. 승리를 위한 파괴보단 희생을 통한 공존의 모색. 이거 어디서 많이 본거라고 느껴지지 않는가? 접으면서... 영화는 디지털 테크놀러지라는 외계 가이아의 습격에 혼란스럽고 때로는 분노한다. 내러티브라는 우리의 가이아는 유린당하고 소멸하고 있는듯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정령(영화의 중심적 요소, 이를테면 미장센같은거..)을 모아 외계의 가이아에게 손을 내민다면 디지털과 내러티브는 더불어 살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상상력마저도 위협하는 기술앞에서 그들을 부정하기 보다는 더 큰 하나로 아우르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그 여덟번째 정령은 결국 우리들의 가슴에 있는 예술의 또 다른 이름 인간에의 애정이될 터이다. 하나의 오락영화로 치부할 수 도 있는 이 영화앞에서 이런 비장한 생각이 드는 이유는 영화가 이뤄낸 성과도 만족스럽지만 이런 영화가 나왔다는 현실에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어떤 미래가 비쳐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화이널 팬터지는 그 결과가 아닌 시작에 서있다. 김빠지는 이야기 아직 우리에게는 이 현실이 현실이 아니다. 이 모든 초현실적 기술력은 아직 거대자본의 치마폭 안에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기술을 공유하고 다 함께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디지털 세상은 요원하다. 난 21세기가 오면 자동차가 날아다니고 알약으로 끼니를 때울거라고 만화에서 배웠다. 황금빛 미래는 시간이 주는 선물이 아닌 자본이 주는 선물이었나 보다. |
|||||||||||||
|
|||||||||||||
|
|||||||||||||
|
|
| ⓒ 2001 zetyx.com / Skined by ZeZZ.com |